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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를 읽다.


문득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읽고 싶었다.
원문을 충실하게 번역한 책을 보고 싶었으나 찾을 수 없었고,
말하자면 감상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손택수 지음, 아이세움 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17년  섬에서의 유배생활 끝에 생을 마감한 옛 사람이 남긴 이 책은
낚시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당연히 읽지 않으면 안될 고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자산'은 지금의 흑산도를 가르킨다.
유배를 당한 정약전의 암담한 마음에 
'흑산'이라는 단어 마저 음침하고 두려운 데가 있어,
 같은 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자玆'자를 써서 흑산을 자산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자산어보는 따라서 '흑산도 어류 백과 사전'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며,
이 분야에서 우리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책이다.
자산어보는 필사본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정약전의 사후, 벽지로 발라져 있는 것을 그의 동생 정약용이 다시 베껴쓰게 하고
보충 하였다고 한다. 

유배를 가면 반상의 구분 없이 스스로 농사를 짓고,
그 동네 사람과 어울릴 것
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유배지에서도 양반은 엄연히 양반이었다.

양반은 여전히 상것들에게 호령을 하였고,
그 동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난데 없이 상전이 하나 더 생긴 꼴이었다.
그러나 정약전은 이러한 반상의 구분없이 동네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고,
서당을 지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얼마나 신망이 깊었으면 옆의 섬으로 거처를 옮기려 했을 때,
정약전을 실은 배를 잡고는 가는 배를 가로 막았다고 한다.
이 정도의 신망과 이 정도의 책을 쓸 수 있었다면, 
동네 사람들과 함께 고기를 함께 잡으러 나갔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반상의 구분없이 섬사람들고 동거동락했던 정약전의 삶은 자산어보에 그대로 반영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쓰면서 '창대' 라는 흑산도의 토박이 섬 소년에게 많이 의지를 한다.
자산어보에는 이 소년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며, 그의 말이 자주 인용된다. 
그 섬에서 나고 그 섬에서 자라 많은 경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이 소년과
고기하나를 놓고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하는 광경이 절로 머리에 떠오르게 된다.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갈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요샛말로 하면 디렉토리를 어떻게 만들것인가에 따라 책의 서술 양식이 달라진다.
정약전은 재미있게도  비늘이 있는 고기와 비늘이 없는 고기로 나누고(인류와 무인류),
조개와 같이 껍질이 있는 종류(개류)와 가마우지와 같은 잡류로 나누었다.
이렇게 보면 자산어보는 딱히 고기 뿐만 아니라 바다에 나는 그 모든 것을 다룬 것이고
명실상부한 바다에 관한 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만만한 홍어 좆이 두 개라는 사실을 이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홍어에 관한 정약전의 서술. 

모양은 연잎과 같은데 암놈은 크고 숫놈은 작다.
검붉은 색을 띠고 있고, 입은 주둥이 아래쪽의 가슴과 배사이에
일자형으로 벌어져 있다. 꼬리는 돼지 꼬리처럼 생겼고,
중심부에 가시가 어지럽게 돋아나 있다.
숫놈의 생식기는 두개이다. 뼈로 이루어진 그것은 흰 칼모양을 하고 있으며
아래 쪽에 고환을 달고 있다.
두 날개에는 가는 가시가 있어서
암놈과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합한다.
암놈이 낚시바늘을 물면 숫놈이 달려들어 교미를 하다가
낚시를 들어 올릴 때 나란히 끌려 올라 오기도 한다.
암놈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숫컷은 간음 때문에 죽는다고 말 할 수 있으니
음란하게 색을 밝히는 자의 본보기가 될만하다. 

생김새와 더불어 습성이 기술되고, 해학적 교훈까지 곁들어져 입가에 웃음을 짓게한다.
뿐만아니라 다른 어류들의 설명에서는 질병에 대한 효능까지 서술하고 있다.

어떤 사물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에는 당연히 서술자의 세계관이 녹아 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참담했을 유배 시절,
절망속에서도 바다와 자연을 관찰하며, 해학까지 곁들인 그의 경지는
어디까지였을까. 

일독을 권한다.